기후변화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중심에 ‘탄소중립(Net Zero)’이라는 개념이 있다. 탄소중립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와 이를 상쇄하는 노력을 통해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순환경제는 자원의 순환 사용을 통해 자원 추출, 제조, 폐기 등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순환경제와 탄소중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1.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과 순환경제의 대응 방식
탄소배출은 자원의 추출과 가공, 소비, 폐기 과정에서 발생한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 사용은 물론,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 이를 사용 후 폐기하는 단계 모두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순환경제는 이러한 흐름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환한다.
- 제조 단계에서 친환경 소재 사용: 제품 생산 시 재생 자원이나 생분해성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자원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인다.
- 제품의 수명 연장: 수리, 재사용, 리퍼비시 등을 통해 제품의 사용 기간을 늘려 새 제품 생산에 따른 탄소 배출을 억제한다.
- 재활용 및 업사이클링: 버려진 자원을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켜 폐기물 처리를 줄이고 원자재 사용을 최소화한다.
2. 순환경제를 통해 탄소중립을 실현한 사례들
(1) 파타고니아(Patagonia)의 ‘Worn Wear’ 프로그램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소비자가 헌 옷을 반납하고 수선된 제품을 다시 구매할 수 있는 ‘Worn Wear’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고 폐기물을 줄이며,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고 있다.
예: 100벌의 자켓을 재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새 제품 생산 시 배출될 탄소를 수백 kg 줄일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소비자 참여율이 높다.
(2) 애플(Apple)의 재활용 시스템
애플은 오래된 아이폰을 분해해 희귀 금속과 배터리를 추출하는 로봇 '데이지(Daisy)'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절약하고, 자원 추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다.
예: 아이폰 1대를 재활용하면 금, 은, 코발트 등 고가의 금속을 회수할 수 있으며, 광산 채굴 대비 최대 90% 이상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3) 이케아(IKEA)의 순환경제 전략
이케아는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순환 가능한 자원으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그 일환으로 'Buy Back & Resell' 프로그램을 운영, 고객이 사용한 가구를 매입해 리퍼비시 후 재판매한다.
예: 고객이 반납한 책장을 수리하여 새 제품 대신 재판매함으로써, 나무 자원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온실가스 발생을 억제한다.
3. 산업 차원에서 순환경제를 통한 탄소 감축
(1) 도시광산(Urban Mining) 전략
일본은 폐휴대폰, 노트북 등에서 귀금속과 희토류를 추출하는 도시광산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자원 채굴은 탄소 집약적인 작업이지만, 도시광산은 기존 제품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탄소배출량이 훨씬 적다.
예: 1톤의 스마트폰에서 회수 가능한 금의 양은 광석 1톤 대비 100배 이상이며, 이 과정에서 탄소 배출은 광산 채굴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
(2) 폐기물 에너지화(Waste-to-Energy)
덴마크 코펜하겐의 ‘암아백스(Copenhill)’는 폐기물을 연소해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는 발전소로, 현대식 스키장과 클라이밍 타워를 겸하고 있다. 폐기물을 매립하는 대신 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온실가스 발생을 크게 줄이고 있다.
예: 코펜하겐은 이 시설을 통해 연간 4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면서도 매립에 따른 메탄가스 발생을 방지하고 있다.
4. 탄소중립 정책과 순환경제의 접목
전 세계 많은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순환경제를 법제화하고 있다.
- EU 그린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순환경제 행동계획’을 발표, 제품 설계부터 재활용까지의 전 과정을 규제.
- 한국의 자원순환기본법: 2023년부터 폐기물 발생 억제와 재활용 확대를 법적으로 유도하며, 탄소중립 로드맵과 연계되어 있다.
- 중국의 순환경제법: 기업이 폐기물을 의무적으로 분류·처리하도록 하고, 순환 자원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정책 추진 중.
5. 개인이 순환경제를 통해 기여할 수 있는 탄소중립 실천법
(1) 다회용품 사용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면 매번 생산되는 컵의 제조 및 수송과정에서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
예: 텀블러 한 개는 약 100번 이상 사용할 수 있으며, 종이컵 기준으로 약 10kg 이상의 탄소배출을 절감할 수 있다.
(2) 중고 거래 및 리퍼 제품 구매
중고 의류나 전자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새 제품 제조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예: 중고 노트북 1대를 구매할 경우, 새 제품 대비 약 200kg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3)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실천이다. 음식물은 부패하며 메탄가스를 배출하는데, 이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 더 강력한 온실가스다.
예: 남은 음식을 냉동 보관해 다시 활용하거나, 푸드쉐어링 플랫폼을 통해 식재료를 나누는 방식 등이 있다.
6. 결론: 순환경제 없이는 탄소중립도 없다
순환경제는 단순히 자원 절약을 넘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환경 목표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제품을 처음부터 재활용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자원의 흐름을 닫힌 고리로 만드는 순환 구조는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기업은 순환경제를 비즈니스 전략에 통합해야 하며, 정부는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개개인의 생활 속 실천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 순환경제는 그 출발점이자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