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보급이 가속되면서 향후 10-15년간 대규모의 사용 종료 배터리(End-of-Life, EoL)가 발생한다. 이 배터리는 대개 차량에서의 고출력·고에너지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70-80% 수준의 잔존용량(SOH)’에 도달했을 때 퇴역하지만, 정지형(Stationary) 응용에는 여전히 유효수명이 남아 있다. 따라서 (a) 2차 사용(second-life, SLB)으로 수명을 연장하거나, (b) 재활용(recycling)로 핵심 금속을 회수하는 두 경로가 순환경제의 양 날개가 된다.
아울러 LCA(전과정평가)는 재활용이 광산 채굴·정련 대비 환경발자국(온실가스·물·에너지)을 크게 낮출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최근 산업 규모 데이터를 사용한 연구는 배터리급 소재를 재활용으로 생산할 때 최소 58%의 환경영향 저감이 가능하다고 보고한다. 전력 믹스(심지어 지역별 전기 탄소집약도)가 성능을 좌우한다는 점도 중요한 시사점이다.
2차 사용(Second-Life) 기술과 응용
(a) 선별·리패키징·BMS
2차 사용의 기술적 병목은 ‘이력 불확실성’과 ‘셀 간 이질성’이다. 모듈/팩을 분해해 셀 상태를 선별·등급화하고, 균등화 리패키징 및 안전 중심의 BMS 재설계가 필요하다(열폭주 관리, 고장진단, SOH 추정). 종합 리뷰는 두 가지가 핵심임을 지적한다: (1) 정확한 SOH 추정·선별 비용의 절감, (2) 안전 설계와 인증 체계.
(b) 대표 응용
- 재생에너지 연계 ESS: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완화하며, 부하이동·피크저감에 기여한다. 신규 정지형 배터리 대비 초기투자비 절감이 가능하지만, 열화·운전창 제약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 충전 인프라 버퍼(허브·슈퍼차저): 급속충전소에 SLB를 병렬 배치하면 피크수전 부담과 수전설비 증설을 줄이고, V2G/V2B(건물)와 결합해 수익원을 다변화할 수 있다. 일부 연구는 스마트 충전과 V2G를 결합하면 충전비용이 두 자릿수(24~30%) 수준으로 절감될 잠재력이 있음을 보인다(전력가격·제도 민감).
- 배터리 스와핑/마이크로그리드: 가정·상업시설의 피크완화, 도서·산간 마이크로그리드에서의 자가소비 최적화 등. 포트폴리오 다양성이 경제성의 관건이다.
(c) 경제성의 조건부성
SLB는 “충분히 싸야” 경쟁력이 있다. 신규 Li-ion BESS의 급격한 원가 하락으로 SLB는 더 큰 할인율을 요구받는 추세이며, 잔존가치와 선별·보증 비용을 감안하면 시장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IDTechEx). 정책·요금제·보증체계가 미비하면 SLB보다 곧바로 재활용으로 유도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재활용 기술(소재 회수)
(a) 공정 스펙트럼
- 파이로메탈(용융·제련): 혼합 스크랩 허용성·공정 관용도가 높고 니켈·코발트·구리 회수에 강점. 에너지 집약·탄소 배출이 커 리튬·알루미늄 손실이 발생하기 쉽다.
- 하이드로메탈(습식·침출): 용매·침출·침전/추출로 Li까지 높은 회수율 가능. 화학시약·수처리 부담, 지역 전력믹스 민감도 존재. 최신 LCA는 공정 배출의 주요 기여원이 산·시약임을 지적한다.
- 직접재활용(Direct): 양극활물질 구조를 보전·재리튬화하여 고가치로 복원하는 방식. 연구·파일럿 단계가 많고, 균일성·오염관리·규모화가 과제다.
(b) 회수·효율 목표(정책 연계)
EU 배터리 규제는 리튬 50%(2027)→80%(2031), 코발트·니켈·구리·납 90%(2027)→95%(2031)의 회수 목표를 제시한다. 이는 공정 선택과 설비 투자의 방향타로 작동한다.
(c) 환경성과(최신 LCA)
산업 규모 데이터 기반 분석은 재활용이 전통적 채굴·정련 대비 환경영향을 최소 58% 저감함을 보고한다. 다만 전력 탄소집약도에 따라 결과가 5배까지 변할 수 있어, 재활용 설비의 ‘그린 전력’ 조달이 핵심 설계요구임을 시사한다.
경제성과 환경편익의 비교
- 경제성: SLB는 kWh당 매입가(팩 분해·선별·리패키징), 보증·보험, 화재안전 설비, 프로젝트 금융조건, 그리고 전력시장(피크요금·수요반응·용량요금) 변수에 민감하다. 일부 지역·사업모델에서는 수익성이 입증되나, 원자재 가격 하락·신규 BESS 저가화는 압력 요인이다. 영국 등에서 중간재·EoL 재고가 쌓이는 현상은 재활용/재사용의 제도·인프라 미비를 방증한다.
- 환경성: SLB는 ‘제조 회피’로 탄소를 절감하고, V2G·재생에너지 연계 시 계통 유연성을 증대하여 자원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효과가 크다. 반면 재활용은 순수 자원 회복·공급망 안전성에 직접 기여한다. 두 경로 모두 필요하나, 그린 전력 기반 재활용과 투명한 데이터(패스포트)를 접목할 때 편익이 최대화된다.
EU 배터리 규제(2023/1542)의 시사점
EU는 전 주기 거버넌스로 재활용 의무·회수율·재생원료 최소함량 및 탄소발자국·배터리 패스포트를 도입했다.
- 재생원료 최소함량(2031/2036): Co 16%→26%, Li 6%→12%, Ni 6%→15%, Pb 85%(유지).
- 회수목표: 리튬 50%(’27)→80%(’31), Co/Ni/Cu/Pb 90%(’27)→95%(’31).
- 탄소발자국 제도: 단계적 의무화—선언(모델별) → 성능등급 표시 → 최대치 기준. 일정은 EV부터 먼저 적용(선언 2025년 전후 개시, 등급 2026년, 문턱 2028년)으로 정리된다(유형별 세부 상이).
- 배터리 패스포트: 2027년 2월부터 EV·산업용(>2kWh)에 의무화(고유 QR로 조회, 원산지·재활용함량·탄소·SOH 등 포함). 선제 도입 사례도 등장했다.
평가: EU는 “데이터 투명성(패스포트) → 재활용·재사용의 경제성 제고 → 순환율 상향”이라는 연결고리를 제도화했다. 이로써 SLB 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이력 불확실성)를 제도적으로 축소하고, 재활용 투자의 예측가능성을 높인다.
한국의 순환경제 전략: 현황과 보완점
최근 한국 정부는 중고 배터리의 자원화·유통 체계를 본격 정비 중이다. 2024년 7월 발표된 ‘사용후 배터리 활성화 대책’은 법·제도·인프라 구축을 명시했고, 2025년에는 유통사업 등록제를 신설해 도매·플랫폼형 유통을 제도권으로 편입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재활용 소재 인증·표시 제도 시범사업(2024.3)**을 추진해 ‘재활용 원료 함량’의 신뢰를 높이고 있으며, 산업부는 배터리 패스포트(수명·원산·재활용 정보) 시범 적용으로 데이터 기반 순환을 준비 중이다.
비교 평가(對 EU)
- 데이터 투명성: EU는 2027년 의무화·상세 데이터 요건이 구체적이다. 한국은 시범단계에서 상용·의무화 로드맵의 속도와 데이터 스키마 표준화(국제 상호운용성)가 관건.
- 재생원료 최소함량: EU는 2031/2036년 목표치를 제시해 투자 신호가 명확하다. 한국은 재활용 인증·표시로 품질 신뢰를 구축하는 중이며, 향후 최소함량·회수율의 정량 목표 제시가 민간 투자에 도움이 될 전망.
- 시장형 유통체계: 2025년 유통사업 등록제는 SLB·스크랩 흐름의 합법적 ‘창구’를 개방한다는 점에서 진전이다. 다만 SLB 안전규격·성능보증·보험·화재책임 등 사후관리 제도의 촘촘함이 성패를 좌우한다. IEA
- 전력 믹스·입지정책: LCA가 지적하듯 재활용의 환경성과는 전력 탄소집약도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의 재활용 클러스터는 재생에너지 전력 연계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정책·산업을 위한 제언
- 배터리 패스포트의 ‘실사용성’ 확보: SOH·사이클·온도 이력 등 동적 데이터가 2차 사용 선별·보증 비용을 낮춘다. EU 스키마와 상호운용되는 API·데이터모델 표준을 조기 확정할 것.
- SLB 안전·보증 프레임: UL·IEC 기준 참조한 모듈화·화재안전·격리·감시 요건과 보험 연계. 사업자 등록제와 연동해 ‘최소 보증조건’을 규정.
- 재활용 녹색전력 조달: 재활용 LCA의 민감도를 감안해 RE PPA/녹색요금·열회수 연계 등을 의무화/인센티브화.
- 혼합전략의 경제성 최적화: ‘선(善) 재사용-후(後) 재활용’ 경로가 항상 최적은 아니다. 배터리 화학계(LFP/NMC), 잔존가치, 전력시장, 메탈 가격(리튬·니켈·코발트) 변동에 따라 직행 재활용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정량 의사결정(실물옵션·수리최적화)을 표준 프로세스로 도입할 것. NatureFinancial Times
- 공공조달·디맨드풀: 공공 ESS·충전허브 사업에서 SLB 가점·재활용 원료 최소함량 가점을 병행해 초기 시장 형성.
핵심 정리
- 2차 사용은 재생에너지 기반 충전 인프라·피크저감·마이크로그리드에서 실용성이 크지만, 데이터 투명성·안전·보증이 병목이다.
- 재활용은 최신 LCA 기준으로 ≥58% 환경영향 저감(채굴 대비)의 잠재가 확인되며, EU는 리튬 50→80%, Co/Ni/Cu/Pb 90→95% 회수 목표와 **재생원료 최소함량(2031/2036)**으로 투자 신호를 제공한다.
- EU는 2027년 배터리 패스포트 의무화로 SLB·재활용의 데이터 인프라를 제도화. 한국은 유통사업 등록·재활용 인증 시범 등 제도 골격을 마련 중으로, 정량 목표·데이터 표준화가 다음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