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Electric Vehicle, EV)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EV 확산의 근간을 이루는 배터리 산업은 필연적으로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특정 광물에 대한 수요 급증을 초래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2021)에 따르면 204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용 광물 수요는 현재 대비 최소 6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추세는 ‘그린 모빌리티’가 표방하는 친환경성 뒤에 심각한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수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전기차가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동시에 또 다른 형태의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를 “그린 모빌리티의 역설(Green Mobility Paradox)”이라 부를 수 있다.

배터리 원재료 채굴의 환경·사회적 문제
아동 노동과 인권 침해
특히 코발트의 주요 산지인 콩고민주공화국(DRC)은 세계 공급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지역의 소규모 채굴(mining artisanal) 현장에서는 열악한 안전 환경 속에서 아동 노동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인권단체 보고서에 따르면, 코발트 광산에서 일하는 아동들은 안전장비 없이 깊은 갱도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심각한 건강 위험에 노출된다. 이는 전기차 산업이 표방하는 ‘지속가능성’의 가치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생태계 파괴
리튬은 주로 남미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의 ‘리튬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염호(소금호수)에서 추출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지하수가 소금물 증발지로 끌어올려지는데, 이는 지역 생태계와 농업 기반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는 리튬 채굴로 인해 습지와 야생동물 서식지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으며, 현지 원주민 공동체는 전통적 생계 수단을 잃고 있다.
수자원 오염
니켈 채굴과 제련 과정에서는 황산, 중금속 등이 배출되어 하천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문제가 지적된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니켈 광산 지역에서는 산성광산배수(Acid Mine Drainage)로 인해 수질오염이 발생하고, 이는 지역 주민들의 식수원과 어업 기반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이처럼 리튬, 코발트, 니켈 채굴은 아동 노동·생태계 파괴·수자원 오염이라는 복합적 문제를 야기하며, 이는 ‘그린 모빌리티’가 단순히 탄소 저감의 성과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린 모빌리티의 역설’: 비판적 시각
전기차는 ‘배출가스 없는 차량’이라는 이미지로 소비자와 정책 당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기반이 되는 광물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사회적 피해를 고려하면, 전기차는 지역적 전환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 선진국은 전기차 보급으로 대기질을 개선하고 탄소배출을 줄이지만,
- 개발도상국은 원재료 채굴로 인한 환경 파괴와 인권 문제를 감당한다.
이는 전기차가 “친환경의 소비”와 “비환경적 생산”이라는 모순적 구조 위에 세워져 있음을 의미한다. 학문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환경 부담의 외부화(environmental externalization)로 설명된다. 즉, 친환경 전환의 이익은 소비국이 누리고, 그 비용은 자원 산출국의 공동체가 부담하는 구조이다.
EU의 공급망 정책
EU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유럽 배터리 연합(European Battery Alliance)’ 및 ‘중요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2023)’을 통해 공급망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공급망 실사(due diligence) 의무화: 기업이 광물의 원산지, 노동환경, 환경영향을 추적·검증하도록 요구.
- 재활용 확대: 2030년까지 사용 후 배터리의 리튬·코발트·니켈 회수율을 법적으로 강화.
- 자원 다변화: 특정 국가 의존을 줄이고, 아프리카·남미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공급망 다변화 추진.
EU 정책은 단순한 자원 확보를 넘어 윤리적 조달(Ethical sourcing)과 순환경제 구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접근이다.

한국의 공급망 정책
한국은 세계적인 배터리 제조 강국으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원재료 공급망은 해외 의존도가 높으며, 특히 니켈·코발트는 인도네시아와 DRC에 편중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2022년 「핵심광물 안정적 공급망 확보 전략」을 발표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국제 협력 강화: 미국, 호주, 캐나다 등과의 핵심광물 파트너십 체결.
- 재활용 산업 육성: 국내에서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및 2차 전지 원료 회수 산업 지원.
- 공급망 리스크 관리: ‘경제안보 차원’에서 핵심광물 공급망을 전략물자로 지정하고 관리.
그러나 한국의 정책은 아직 인권·환경 기준의 실사 의무화가 미흡하다는 한계가 있다. EU가 ‘윤리적 공급망’을 제도화한 것과 달리, 한국은 공급망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정책 비교 및 시사점
- EU: 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내재화 → 윤리적 조달과 순환경제 강조.
- 한국: 경제안보 및 산업 경쟁력 중심 → 원재료 확보와 재활용 기술 강화에 치중.
이 차이는 정책 목표와 산업 구조의 차이에서 기인하지만, 장기적으로 한국도 글로벌 공급망 규범(EU, OECD 기준)에 부합하는 지속가능성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EU와의 교역 관계를 고려할 때, 윤리적 조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한국 배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전기차는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기술이지만, 배터리 원재료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동 노동, 생태계 파괴, 수자원 오염 문제는 ‘그린 모빌리티의 역설’을 보여준다. 즉, 친환경 이동수단이 또 다른 환경적·사회적 불평등을 생산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EU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윤리적 공급망 관리와 재활용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공급망 안정성과 더불어 환경·사회적 기준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순환경제 기반의 자원 전략과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만 전기차 산업의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

참고
✅ 배터리 원재료 채굴 문제 및 정책 비교 표
리튬 | 코발트 | 니켈 | EU정책 | 한국 정책 | |
주요 산지 |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리튬 트라이앵글) | 콩고민주공화국(DRC) | 인도네시아, 필리핀, 러시아 | - 원자재 다변화 전략 추진 - 아프리카·남미 국가와 협력 확대 - 공급망 실사지침(Due Diligence Directive) 도입 |
- 해외 자원개발 공기업(KORES) 통한 확보 - 한-칠레, 한-호주 FTA 활용 - 자원개발 금융 지원 |
환경 문제 |
수자원 고갈(사막지대 염수 채굴) 토양 염도 상승 |
토양·수질 오염 중금속 노출 |
산림 파괴, 산성광산배수 발생 | - 재활용 산업 육성(배터리 순환경제) 강조 - 친환경 채굴 가이드라인 제정 |
- 폐배터리 재활용 시범사업 확대 - ‘K-순환경제 로드맵’ 수립 |
사회 문제 |
토착민 공동체와 갈등 농업 기반 붕괴 |
아동노동 심각 인권 침해 |
지역사회 건강 악화 | - 인권·환경 실사 의무화 법안 - 공정무역형 광물 인증 제도 |
- ESG 경영 의무화 추진 - 공급망 실사제도(EUDD 대비 연구 단계) |
이슈 | “물 없는 리튬” 기술 개발 중 친환경 대체 공정 연구 필요 |
인권 문제로 EV 친환경성 훼손 | 대규모 벌목으로 탄소중립 목표와 충돌 | - “그린 딜”과 연계, 원자재 전략 포함 - CRMA(핵심원자재법) 통해 자급률 목표(2030년 40%) |
- 자원안보 차원에서 해외 자원개발 - IRA 대응 위해 미국·EU와 공급망 협력 |